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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및 요약

조국의 법고전 산책 중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by lufa 2023.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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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법고전 산책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저자 조국이 고른 법과 관련된 고전 15권을 중심으로 핵심 내용을 소개하고, 그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밝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법고전의 사상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법과 제도 속에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저자는 법고전의 보석 같은 문장을 뽑아내고 숨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이를 한국 사회에 적용해보자고 말한다. 자유, 평등, 법치, 사회계약, 평화, 소수자 보호, 시민불복종, 저항권, 죄형법정주의, 사법심사 등 법학의 핵심 개념을 통해 한국 사회의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돌아본다. 어려운 고전을 다루고 있지만, 강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청소년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통해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고 더 나은 세상으로 걸어가는 사유와 성찰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조국
출판
오마이북
출판일
2022.11.09

 

제2장 삼권분립과 '법을 만드는 방법

몽테스키외 : 근대 민주주의 정체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을 최초로 제시하고 '법복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시민참여재판을 강조하며, 입법부가 따라야 할 '법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했다. 

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1689~1755)의 <법의 정신>은 루소의 <사회계약론>보다 14년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몽테스키외는 귀족 출신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큰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보르도 고등법원 평정관 지위를 상속받습니다. 가난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나 사실상 고아로 자란 루소와는 배경이 많이 다릅니다.

몽테스키외의 책은 1751년 교황청 금서 목록에 등재됩니다. 

귀족 출신에 판사까지 지낸 사람이고, 글의 스타일도 루소와 달리 꼼꼼하고 치밀해서 답답한 느낌마저 주는데 교황청은 왜 몽테스키외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을까요?

미국독립혁명 시기 사상가 토머스 페인(1737~1809)은 그의 책 <인권>에서 몽테스키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보르도 고등법원의 원장이었던 몽테스키외는 전제국가에 사는 저술가의 입장에서 나아갈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갔다...."

전제국가에 사는 사람이 나아갈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갔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몽테스키외의 글들을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몽테스키외가 32세에 출간한 <페르시아인의 편지>(법의 정신은 몽테스키외가 만 59세되는 해에 출간합니다)에서 당시 유럽 사회의 기득권층을 신랄하게 조롱한 글귀가 있습니다. 

"형식이 법학과 의학 중 어느 쪽에 더 유해했는지, 의사의 큰 모자 밑보다는 법률가의 법복 아래서 얼마나 더 많은 피해를 냈는지, 의학으로 죽은 사람 수보다 법률로 파멸당한 사람의 수가 얼마나 더 많은지는 가늠하기 꽤 힘든 일일 거야." 

"만약 군주가 백성들에게 행복한 삶을 향유하게 하기는커녕 고통을 주고 멸망시키려 든다면 순종의 근거는 무너져버리는 거네, 백성들이 군주에게 예속되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거고, 양자는 서로 자유로운 관계로 접어드는 거네." 

이미 권력을 잡고 있는 군주에게 백성이 군주와 자유로운 관계가 되려고 하면 군주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요? 보고 있지만 않을 군주를 대상으로 백성은 어떤 방법으로 양자가 서로 자유로운 관계가 되게 할 수 있을까요? '혁명'을 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전제국가에서 '혁명'을 이야기 하니 앞서 토마스 페인이 평가 한 것처럼 전제국가에 사는 저술가의 입장에서는 갈데까지 간 것입니다. 

1689년 명예혁명의 결과물인 '권리장전'은 새로운 국왕과 의회의 타협의 산물로서 이후 권력의 중심은 국왕에서 의회로 이동하고 입헌군주제가 시작됩니다. 

권리장전이 전제국가를 물아내고 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입헌군주제가 시작되었다는 평가와는 별개로 토머스 페인은 명예혁명에 대해 다른 평가를 합니다. 

"국민은 제임스와 윌리엄이라는 두 악마 중에서 덜 나쁘다고 생각하는 쪽을 선택했다....여기서 권리장전이라는 법령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의 여러 부문이 권력, 이익, 특권을 나누어 갖기 위한 흥정에 불과하다." 

삼권분립을 최초로 제기했던 사람이 바로 몽테스키외입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부, 법관으로 구성되는 사법부, 국민이 선출한 직업 정치인의 활동 무대인 입버부가 각각 있으면서 서로 견제한다는 삼권분립의 구상은 몽테스키외에 의해 정리보디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법의 정신> 완역본에 있는 구절은 이렇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모두 그것을 함부로 쓰기 마련이다. 이점을 지금까지의 경험이 알려주는 바이다. ... 사람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본질에 따라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

권력은 도덕, 선의, 설교 등으로 저지되지 않습니다. 또한 도덕적이고 선한 권력자에 의해서도 저지되지 않습니다.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려면 권력이 쪼개지고 이 권력들끼리 서로 감시,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는 중요한 지적이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문구의 의미입니다. 

삼권분립의 정신이 잘 담겨있는 문구입니다. 

<법의 정신>에서 주장하는 삼권분립론의 핵심을 살펴보겠습니다. 

"동일한 사람 또는 동일한 관리집단의 수중에 입법권과 집행권(행정권)이 한데 모일 때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같은 군주 또는 같은 원로원이 법을 독재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독재적인 법을 만들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재판권이 입법권과 집행권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도 역시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판권이 입법권과 결합하게 되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력은 자의적인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이 입법자가 되기 때문이다. 재판권이 집행권과 결합하게 되면 재판관은 압제자의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동일한 사람이나 동일한 제후 혹은 귀족이나 인민집단이 세 가지 권력 등을 모두 행사한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하나로 되어 있다면 독재적인 법을 만들고 집행하여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합니다. 

사법부와 입법부가 결합하면 법을 만들고 판단하는 세력이 한 주체가 되어 독재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사법부와 행정부가 결합하면 조선시대 사또처럼 백성을 기소하고 판결도 내리니 집행자의 입맛에 따라 법의 판단이 바뀔 수 있어 역시 독재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정권의 성격이 좌파냐 우파냐, 민중 권력이냐 엘리트 권력이냐, 좋은 권력이냐 나쁜 권력이냐는 관계없고, 어느 경우라도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몽테스키외의 통찰입니다. 그리고 삼권분립론은 미국독립혁명 후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화국을 만드는 기초가 되어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몽테스키외는 재판관은 "법의 문구를 선언하는 입에 불과하다"고 주장함으로 법관의 역할을 축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를 더 중시했습니다. 의회가 법률을 잘 만들어서 법관이 이 법을 잘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몽테스키외는 시민참여재판을 강조합니다. 

"인민은 어떤 재판관이 성실한지, 어떤 재판관이 심판에 만족하여 많은 사람들이 법정에 나오는지, 어떤 재판관이 부패에 연루되지 않았는지 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인민이 직접 재판관을 선출하는 것은 당연하다. ... 재판권은 상설적인 원로원에 부여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시민 가운데 선출된 사람들이 연중 어느 일정한 시기에 법이 정하는 방식에 따라 필요한 기간만 존속하는 법정을 만들어서 행사해야 한다." 

재판관이 '시민 가운데 선출된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은 판사직선제 또는 배심제를 말합니다. 

유무죄를 비법률가 시민이 판단하는 영미식 '배심재판', 시민과 법관이 같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독일식 '참심재판'등 유형은 다양하지만, 시민의 재판 참여는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무현 정부 때 사법개혁의 결과로 배심제가 도입되었습니다. 그런데 현행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은 법관에게 '참고사항'일 뿐 구속력이 없습니다. 

반면 영미권에서는 법관이 배심관의 평결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법관의 독립은 존중해야 하지만, 시민의 재판 참여 없이는 법관이 '법복귀족'이 되는 것을 막기 힘듭니다. 게다가 배심재판에서는 우리 사법체제의 고질병인 '전관예수'가 작동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몽테스키외는 피고인이 법관을 제척 또는 기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중대한 고발에 있어서 범죄인은 법과 협력해서 스스로 재판관을 선임해야 한다. 또는 적어도 많은 수의 재판관을 피할 수 있게 함으로써 남은 사람을 그가 선택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재판관은 피고와 사회적, 신분적으로 동등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는 피고가 자기를 억압할 것 같은 사람들의 수중에 떨어진 거싱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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