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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하지만 필요한 지식

자유와 평등의 혁명 아나키즘

by lufa 2023.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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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슈메이커가 쓰고 조효제가 옮긴 책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중 "아나키즘" 부분을 참고하여 쓴 글입니다. 

서론 

'아나키즘'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아나르코스'에서 유래되었는데, 이것은 '다스리는 사람이 없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이 다스리는 사람도, 다스리는 제도도 없는 사회적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아나키즘의 핵심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아나키즘'이라는 용어가 근대 정치사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프랑스혁명 당시였는데 아나키즘은 '분노한 사람들', '미치광이'라는 뜻으로 프랑스혁명 시절 자코뱅파보다 더 급진적이었던 극좌파 집단을 지칭하는 앙라제를 경멸적으로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아나키즘의 원칙을 신봉한 사람들, 예를 들어 헨리 데이비드 소로, 레오 톨스토이, 모한다스 간디(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인물들을 보더라도 폭력적인 급진주의자들이 아니라 정의, 자유, 비폭력을 철저히 주창했던 사람들이 아나키스트들이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아나키즘은 어떤 사상을 추구하는가?

본론 

1. 인간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존재 

사람들은 인간이 창조한 법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자연의 한계만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다. 대다수 기존 제도들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 에마 골드만은 아나키즘을 "인간이 창조한 법률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질서를 추구하는 철학이며, 어떤 형태의 정부라도 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정부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릇되고 해로운 것이라고 믿는 이론이다"고 아나키즘을 정의한다. 

2.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상호 협력

최초의 주요 아나키즘 문헌으로 알려진 윌리엄 고드윈이 1793년에 출간한 <정치적 정의>에서 고드윈은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부르지 않았다. 고드윈은 자신의 사상을 고전적 자유주의의 논리적 귀결 또는 그것의 급진적 해석으로 간주했다. 1840년대에 들어서야 피에르 프루동이 '아나르코스'라는 말 속에 무질서를 조장하지 않는 동시에 일체의 권위를 철저히 비판하는 정신이 들어 있음을 인정하면서 '아나키즘'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프루동은 "질서는 상위개념이고, 국가는 하위개념이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권위를 통하지 않고도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 여럿 존재할 수 있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 가장 비효율적이고 부당한 방법이 바로 국가의 권위라고 주장했다. 프루동은 그의 저서 <소유란 무엇인가>에서 아나키는 '주인과 군주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과거의 국가주의자와 권위주의자는 지배받지 않는 대중을 무지몽매한 야만인으로 보았고, 지배가 없는 사회를 혼돈이라 매도하며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했지만 지배계급의 하게모니에 대항하기 위해 프루동은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규정했다. 프루동은 아나키는 혼돈이 아니라 진정한 질서이며, 위에서 강요하는 질서가 아니라 민중이 직접 세워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질서라고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 프루동이다. 

프루동을 추종했던 대부분이 아나키스트라는 용어 대신 '상조주의자'라는 명칭을 선호했는데 이 호칭은 정부의 권위로 사회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의 상호 협력을 통해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3. 반국가 운동이 아닌 계급제에 반대하는 운동 :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의 최대화

앞서 아나키스트들에게 아나키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질서의 부재가 아니라 지배의 부재를 의미하고 있다. 데이빗 위크(David Weick)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아나키즘은 모든 계급적 지배(hierarchy)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해소하려고 하는 사회·정치사상을 집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아나키스트의 비판은 확실히 정부(그리고 국가)가 비판이 중심이 되지만 단순한 반국가주의는 아닌 것이다.

— Reinventing Anarchy, p. 139

따라서 아나키즘은 단순한 반정부와 반국가 운동이라고 하기보다 주로 계급제(hierarchy)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위계질서(hierarchy)가 권력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조직 형태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 계급제의 최고 형태이므로 아나키스트가 반국가인 것은 당연하지만 반국가만으로는 아나키즘을 정의하기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아나키스트는 국가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위계질서에 반대한다. 다음은 브라이언 모리스(Brian Morris)의 말이다.

아나키라는 용어는 그리스에서 유래하며 본질적으로는 「지배자가 없는」것을 의미한다. 아나키스트는 모든 형태의 정부나 강제적 권력, 모든 형태의 계급제와 지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멕시코의 아나키스트 플로레스 마곤(Flores Magon)이 말한 국가·자본·교회의「사악한 삼위일체」라 불리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나키스트는 자본주의와 국가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종교 권력에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나키스트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아나키 상태를 확립하거나 유도하려 하고 있다. 아나키 상태란 어떤 억압적 제도도 없는 분권형 사회, 자발적 결합의 연합을 통해 조직된 사회다.

— “Anthropology and Anarchism” Anarchy: A Journal of Desire Armed, no. 45, p. 38

아나키는 혼돈이 아니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혼돈을 포용하는 관점도 존재한다. 이들은 혼돈을 부정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무엇이 질서 있는 자유인가를 규정하는 문제가 '자유를 규정' 하는 것이며 억압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 계열의 철학자인 Feral faun(다른 이름 Wolfi Landstreicher)이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혼돈은 비방 받고 경멸되어 왔다. 심지어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조차 스스로를 혼돈과 관련짓기를 거부했다. 이것은 살인과 환란과 동일시 되어왔다. 그럼에도, 이것이 질서의 세력에 의한 거짓 프로파간다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질서를 강제하는 역사는 전쟁, 살인, 강간, 환란과 억압을 증가시키는 역사였다. 혼돈이 아닌 질서는 오직 모든 존재에게 그 형태를 강제함으로써 그들을 파괴하길 욕망한다. 오직 혼돈의 화신이 되길 자처한 자만이 이 살인적인 질서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돈이 살인과 환란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무질서인가? 아니다. 무질서는 질서를 필요로 하지만 혼돈은 모든 질서의 너머에 있는 것이다. 무질서는 망가진 질서다. 우주는 자연적으로 혼란스럽다. 만일 누군가가 그것의 작은 부분에 질서를 부과한다면 그 질서는 혼란스러운 우주와 충돌하게 될 것이며 망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강제된 질서가 망가지는 것이 무질서다.

질서에 방해받지 않은 혼돈은 균형을 만든다. 이것은 저울과 무게의 인위적인 균형이 아니며 살아있고 언제나 변화하는 야성적이고 아름다운 춤이다. 이것은 경이로우며 마법과도 같다. 이것은 모든 정의의 너머에 있기에 이를 묘사하려는 모든 시도는 단순한 은유에 불과할 것이며 그것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에로틱한 에너지를 결코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아나키즘은 정치, 경제,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계급제(hierarchy)가 없는 사회의 창조를 지향하는 정치사상이다. 즉 아나키는 지배자가 없는 질서를 의미하며, 이것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아나키스트들에게 받아 들여진다. 

결론 

아나키즘은 오늘날 까지 여러 중요한 사회운동에 이념적인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노동조합, 대중 봉기, 파시즘과 나치즘에 대한 저항,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운동, 환경 분야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분야, 다양한 활동의 근간을 제시해주고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있다. 

국가 개념에 대한 중시, 지도자와 위계질서를 숭상하는 자세, 시민들의 자율적 책임의식 등을 경시하는 세력에 저항하며, 개인주의와 자유를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사회결사체를 꾸리고 싶어 하는 욕망이 커질때마다 아나키즘이 주장하는 원칙들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아나키즘은 고전적 자유주의처럼 인간의 진보를 가져올 정치적 원리를 발전시키기 위해 자연과 개인에게 기대를 걸지만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른 점은 자연을 더욱 사회적으로 도욱 도움이 되는 현상으로 파악하며, 개인의 이익을 확보할 자유로부터 인간의 충족감이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익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기회로부터 인간의 충족감이 비롯된다고 믿는 점이다. 

이상적으로 우리는 자유롭고 공평한 사회를 추구하면서도 상호 존중과 협력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아나키즘이 주장하는 사상들은 오늘날에도 하나의 중요한 영감과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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